뉴스우리2018.08.21

제자의 길 40년, 다시 보는 명장면 40 #2

사랑의교회 40주년 특집

기사입력 : 2018.01.21

예수님의 온전한 제자된 우리, 이 땅에 보냄 받은 작은 예수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이뤄가기 위한 사  명으로 40년을 한결같이 달려왔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시고, 영혼을 구원하며, 진리와 사랑으  로 이 땅과 이 민족을 살리시는 역사를 목도했다. News우리는 사랑의교회 40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40컷의 명장면을 소개한다.

 


05 부흥회에서 대각성전도집회로!


1981년 대각성전도집회의 문을 열다

1980년과 1981년 9월에 열린 부흥회는 사랑의교회 체질과 맞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전형적인 부흥회 식의 메시지와 권위주의적인 메시지에 10여명이 겁에 질려 나가기도했다. 그것은 부흥회 참석 인원이 점점 줄어드는 것으로 증명됐다. 이런 부작용 속에서 새신자 전도를 목적으로 하는 ‘대각성전도집회’를 부흥회의 대안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1981년부터 시작한 대각성전도집회를 실제적인 전도의 장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고, 해마다 1000~2000명 이상의 불신자를 초청하고 순수한 복음으로 그들의 삶의 행로를 바꿔놓고 있다.

 

06 달을 보고 활을 쏘다

1980년 교회당 부지를 구입하다 | 1985년.01 사랑의교회 입당예배

"우리도 이제 건축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1980년 주일 점심 식사 자리에서 누군가 불쑥 꺼낸 말이었다. 성도가 점점 늘어나면서 공간에 한계가 있었다. 삼익아파트를 짓고 남은 자투리 땅 748평을 구입하기로했다. 그러나 현실은 막막했다. 당시 이관칠 장로는 “옥 목사님께서 나무를 보고 활을 쏘지 말고 달을 보고 쏘면 더 높이 올라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모두 그 말씀에 힘입어 이 하나님 사업에 전심전력을 다 해봅시다!”라고 중지를 모았다. 부지 비용에 대한 경제적 부담이 컸는데, 다행히 파격적인 값과 1년 이상 분할지불이라는 배려를 받아 부지구입이 해결됐다. 당시 옥한흠 목사의 표현을 빌리면 ‘무지막지한 믿음의 표현’을 한 셈이었다. 이후에도 교회는 지역 주민들의 심한 반대 등 갖은 어려움을 이겨내야만 했다. 1985년 1월 12일 입당예배를 드렸다.

 

07 동포의 땅에 학교를 세우다


1992. 09 중국 연변대 과학기술대학 설립

사랑의교회 창립 비전 중 하나는 북방지역의 영혼들을 가슴에 품는 것이었다. 이에, 중국동포사회 번영과 발전에 기여할 우수인재 양성을 위한 고민을 거듭했고, 선진과학기술교육을 지원, 각 분야의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여 경제사회 발전을 주도하게 하는 교육 사업을 북방사역의 사명으로 새겼다. 
연변대 과학기술대학 설립은 이 사명의 초석이 되어 기적을 눈으로 바라보게 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우리 동포들이 사는 연변에서, 외국인에게 사립학교를 세우도록 허락해줌으로써, 동포의 땅에 사랑의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08 제자훈련의 요새가 된 사랑의교회 안성수양관


1995. 06 사랑의교회 안성수양관 기공예배

1988년 안성수양관 임야 34,000평을 기증 받아, 1995년 수양관 건축부지를 조성했다. 1998년 사랑의교회 창립 20주년을 맞아 온 성도들의 기도와 헌신으로 한국교회 섬김의 장으로 쓰임 받길 기대하며 헌당예배를 드렸다. 한국교회의 수많은 크리스천들에게 휴식공간으로 자리매김 하였으며, 한국교회 기독단체 세미나 장소로 쓰임 받고 있다.

특히 매년 2회 CAL세미나를 통하여 제자훈련의 목회철학을 나눈 현장으로,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땀과 눈물 그리고 역사가 고스란히 묻어있는 곳이다. 

취재 : 커뮤니케이션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