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우리2018.12.14

제자의 길 40년, 다시 보는 명장면 40

사랑의교회 40주년 특집

기사입력 : 2018.01.10

예수님의 온전한 제자된 우리, 이 땅에 보냄 받은 작은 예수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이뤄가기 위한 사명으로 40년을 한결같이 달려왔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시고, 영혼을 구원하며, 진리와 사랑으로 이 땅과 이 민족을 살리시는 역사를 목도했다. News우리는 사랑의교회 40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40컷의 명장면을 소개한다.

 

01 교회 개척 그리고‘사랑의교회’라는 새 옷을 입다

​1978.07 ‘강남은평교회’ 개척, 창립예배

1979.03 교회 이전(삼익빌딩 3층)

1981.09 ‘사랑의교회’로 개칭

 

1978년 7월 23일 주일 오후 3시 창립예배가 드려졌다. 사랑의교회 모태인 강남은평교회 창립예배에서 故은보 옥한흠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사역에서 교회의 역할을 찾았다. 예수님이 세상을 ‘목자 잃은 양’과 같이 여기시고 가슴 아파하며 그들을 위해 일할 일꾼을 찾으신 것처럼, 교회가 세상으로 보내신 소명자로서 평신도를 깨우는 일을 해야 함을 분명히 제시했다.

‘강남은평교회’로는 교회의 정신을 전달하기 어려워, 오랜 고심 끝에 ‘사랑’이라는 두 글자에 주목했고, 모든 계명 중에서 가장 큰 것인 하나님의 사랑, 이웃사랑에 뜻과 마음과 정성을 담아 ‘사랑의교회’라 명명했다. 그렇게 지어진 ‘사랑의교회’라는 이름은 전 교인의 찬성을 얻어 1981년 9월 6일 교회 창립 3주년을 맞아 제자리를 찾았다.

 

 

02 ‘평신도를 깨운다’, 제자훈련을 시작하다

1979~1981년 여제자반 제1기생의 훈련

 

제자훈련의 시작은 교회가 문을 열고, 한 달 반 만인 9월 중순부터 ‘훈련목회’를 시험대에 올려놓으면서 시작됐다. 교인이 고작 30명이었던 당시, 여자 성도들을 잘 키우기만 하면 교회의 리더로 세울 수 있다고 생각했고, ‘성경공부’ 혹은 ‘제자훈련’에 대한 공고를 냈다. 5명의 여성도가 모였고, 그렇게 사랑의교회 여제자반 제1기생의 훈련이 시작됐다. 네비게이토 교제로 1년 반~2년간의 훈련을 통해 순장으로 세워졌다. 이 과정 중 훈련생 모두는 영적으로 큰 변화를 맛봤고, 신앙적인 도약과 성숙을 보였다. 이것이 우리 교회 평신도훈련의 시작이었다.

 

 

03 제자훈련지도자세미나, 목회의 패러다임을 바꿔가다

1986. 03 ‘평신도를 깨운다’ 1차 세미나

 

‘평신도를 깨운다’ 출판 후, 실제 제자훈련에 대한 후속조치 문의가 쇄도했다. 이론과 현장, 그리고 실습의 세 축의 골격을 세우고, 목회자들에 대한 훈련을 시작했다.

세미나 광고가 나가고 등록을 받는 날, 새벽부터 신청자들이 몰려들었다. 한 시간 만에 정원이 다 차고, 등록이 끝나버렸다. 1986년 3월 3일 개강일. 교역자와 순장, 그리고 순원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섬겼다. 이들은 매일 아침 8시부터 9시까지 숨 돌릴 틈 없이 강행되는 프로그램을, 긴장을 풀지 않은 채 따랐다. 평신도를 깨운다 제자훈련지도자세미나의 첫 세미나, 어떻게 목사님들 앞에서 평신도가 감히 성경공부를 인도할 수 있냐는 항의도 있었지만, 평신도를 깨우는 이 세미나는 한국교회의 목회 패러다임을 바꾸는 출발점이 되었다.

 

 

04 장로 장립, 교회의 틀을 잡다

1982. 12 초대 시무장로 장립

 

1982년. 세례교인만 300명이 넘고, 남자 제자반을 마친 집사들이 다락방을 훌륭하게 지도하며, 교회의 구심점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자연스레 교회에는 ‘장로를 세워 교회의 기틀을 튼튼히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모였다. 당시 옥한흠 목사는 한국교회가 중병을 앓고 있는 원인 중 하나가 장로를 바로 세우지 못한 데 있다고 진단, 장로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신앙인’이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제자로의 훈련에만 집중해왔다.

이후 9명의 장로후보가 세워졌고, 1982년 12월 5일 초대장로 장립예배를 드렸다. 당시 교회가 세워질 때 당회원들은 세 가지 약속을 했다. 첫째 교회 안에 장로석을 만들지 않는 다는 것, 둘째 장로들의 방을 따로 만들지 않는다는 것, 셋째 70세가 되면 반드시 은퇴한다는 것이었다.

 

 

취재 : 커뮤니케이션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