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부 토요미술교실 주영(가명) 씨는 줄곧 버스노선만 그린다. 간선·지선·광역버스노선을 훤히 꿰고 있는 주영 씨는 빨강, 노랑, 파랑, 초록색 버스노선을 그림으로 옮긴다. 부모들은 이런 주영 씨가 제발 버스노선을 그리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작년 연말, 주영 씨가 그린 버스노선들은 멋진 십자가 형태의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사랑부 토요미술교실도 이와 같다. 매주 연필 한 자루, 물감 한 통이 24명의 지적장애인을 ‘하나님의 아티스트’로 재탄생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부 교사로 3년째 섬기고 있는 정재영 집사는 작년부터 토요미술교실을 맡아오고 있다. 그를 만나보았다.
“제발 선생님을 보내주세요”
정 집사는 처음엔 ‘그냥 가르치면 되겠지’ 생각했다. 막상 부딪혀보니 홀로 10명 남짓한 학생들을 가르치기엔 힘에 부쳤다.
정 집사는 늘 수업의 첫 시간마다 비행기를 접어서 날리는 것으로 수업을 개시한다. 그림은 손이 아니라 마음으로 그리는 것이라는 그의 생각에 맞춰 그림을 그리기 전 준비운동을 하는 것이었다. 지금이야 모두 익숙하게 준비운동을 하지만 처음부터는 아니었다. “10번을 가르쳐도 안 되더라고요. 종이를 주면 구기고 낙서하고… 당시 10명의 학생들을 혼자 감당하기가 어려웠어요.” 첫 수업의 시작을 상기하면 지금도 등에 땀이 흐른다.
그는 함께 섬겨줄 ‘교사’ 섭외에 돌입했다. 사랑부 교사로 같은 조에서 섬기는 한 교사가 함께 돕기로 했다. 이후 2명의 선생님이 합류하게 됐다.
“혹시… 잘못된 건 아닐까?”
연말, 학생들의 작품전시는 요즘말로 ‘대박’ 그 자체였다. 정재영 집사의 마음엔 솔직히 ‘빨리 도망가야겠다’란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학생들이 변화되는 과정 속에서 ‘아이들을 낮은 자존감에서 구출해야겠다!’라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그 변화의 시작은 학생들이 실제 변화되는 과정을 목격하면서였다. 앞서 언급한 주영 씨가 그러했다. 버스노선이 아닌 다른 그림을 그리라고 하면 짜증을 내고 울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양한 소재의 그림도 그릴 수 있다. 여전히 버스노선도 그리기를 좋아하지만...
또 사랑부 중고등부에 소속된 영원이라는 학생은 처음에 무엇을 시켜도 묵묵부답이었다. 3주가 지났을 때, 어디선가 웃는 소리가 났다. 그 주인공은 영원이. 한 시간이 지나도 웃음소리가 그칠 줄 몰랐다. 그쯤 되니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영원이는 그림을 그리는 것에 대한 기쁨이 터진 것이었다. 그 후 머릿속에 있는 꽃, 나비 등 재미있고 다양한 표현을 캔버스 위에 그려내는 기쁨에 빠졌다.
“이건 보통일이 아니야”
두 번째로 그의 심경에 변화가 생긴 것은 전시회를 찾은 가족들의 모습이었다.
“복도에서 부모님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한 여자 성도의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등 온 가족이 몰려와서 한 그림 앞에서 사진촬영을 하는 모습을 보았어요. 이렇게도 찍고, 저렇게도 찍고… 2~30분씩 찍으며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사실 그림이 썩 좋은 그림도 아닌데, 가족들이 이렇게 좋아하는구나 그때 깨달았어요. 대단한 일을 해낸 것이구나. 1년만 하다가 그만둘까 고민하던 중에 이것은 또 다른 사명이다. 앞으로 계속 해야겠다 생각했어요.”
그가 발견한 것은 가족들의 기쁨이었다. 장애인들, 그리고 그의 가족들은 대한민국이라는 사회 안에서 억눌려 살아간다. 그런 장애인 가족으로부터 기쁨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이들이 그린 그림이 작품으로 걸렸을 때, 가족들에겐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 찾아오는 것이다.
“우리는 이 학생들을 전문가로 키울 생각은 요만큼도 없어요. 그림을 잘 그리면 못 그리는 것보다는 낫겠죠. 그러나 정말 변화되고 치유되는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손을 통해서 나타나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지난 연말, 이 사역을 기쁨의 사명으로 받아들인 후 정재영 집사와 토요미술교실 교사들은 이렇게 기도해왔다. 그리고 올해 토요미술교실에는 무려 두 배가 넘는 24명의 학생들이 찾아왔다. 4명의 교사가 감당하기엔 버거운 숫자. 그래서 이들은 다시 기도했고, 현재 7명의 교사가 함께하고 있다. 정재영 집사를 비롯한 6살부터 46살의 다양한 연령의 학생들에게, 토요미술교실을 통해 하나님께서 많은 기적을 보여주실 것을 믿는다.
그림을 그리는 도구에는 여러 가지가 있고, 여러 방법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다. 하나님도 여러 모양의 우리를 사용하신다. 또 우리를 여러 방법으로 인도하시고, 예배하게 만드신다. 토요미술교실도 그렇다.
이해경 기자 haeya@sarang.org
2024.04.20
